> 축제/행사 > 행사
옥구농민 항일항쟁 기념행사
군산문화원 2006.07.24

1) 개요
우리고장은 옛부터 외적(外敵)에 대한 저항의식이 어느 고장보다 강한 항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군산개항과 동시에 조수와 같이 밀려온 일본인의 횡포와 착취에 끊임없는 저항을 지속해 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3․1운동의 민족 봉기에 호남에서는 제일 먼저 앞장서 대규모의 3․1만세운동으로 항쟁하였다. 우리고장인들은 3․1운동 후 독립운동의 사상을 가진 일부 지식인들이 농민조합 노동운동 등의 조직에 앞장섰었고 민족야학을 통한 계몽운동으로 항일의 의식화 교육을 꾸준히 실시해 왔었다.
일제하 우리 민족의 80%가 농민이었고 그 중 80%가 소작인이었다. 더욱이 군옥지방은 일제시대의 일본인 농장의 밀집지대이며 농토수탈의 대표적인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옥구농민 조합이 창립(1926년)되고 서수농민조합, 서수청년회가 생기면서 서수 농민들은 일본인 지주의 폭압에 조직으로 대항하는 항쟁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속에서 한 맺혀 있었던 서수농민들의 항일저항의 폭발이 옥구농민 소작쟁의이지만 이 항쟁은 3․1운동의 민족운동, 독립운동의 연장이었다.
1905년 서수면에서 농장을 설치한 가와사끼(川崎藤太郞)는 전제적 경영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하는 한편 향토 출신 지주들에게 농장설치를 권장하고 가와사끼가 죽자(1926년) 그들은 대형농장경영이 유리함을 알고 주식회사 형태의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을 설치(1926년) 봉건시대의 영주와 같이 군림하려 하였다.
이엽사 농장은 출발부터 75%의 고율소작료를 요구하였다. 이에 놀란 소작인은 서수농민조합에 의지하여 소작인 대표로 조합대표가 소작료 45%의 징수를 방문 호소했으나 냉대묵살 당하자 농민조합은 임시총회를 열어 감면을 요구하였으나 농장측이 불응하자 불납결의를 하고 다시 대표가 2차 방문하여 소작인의 뜻을 전하면서 사정했지만 농장측은 공갈․협박․불응하였다. 이에 흥분한 서수농민조합은 11월 24일까지 감면하지 않으면 불납하겠다는 뜻을 정식으로 농장측에 통고하자 이를 비웃는 농장측의 간교한 신고를 받은 군산경찰은 농민대표 조합장 장태성을 체포, 포박하여 경찰서로 압송코자 임피역전 주재소에 유치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농민들은 흥분하고 “징을 쳐서 深夜에 五百名이 삼거리 집결하여 無罪者 釋放絶叫하다”라는 조선일보 기사와 같이 야밤에 농민들은 궐기하였다.
군중 약 3백명은 추운 늦가을 밤(11월 25일) 2㎞ 이상 걸어 역전파출소에 도착하여 장태성의 무죄를 주장하고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불응하자 투석․습격․순사 난타를 하였다. 그리고 포박과 포승을 절단한 후 장태성을 업고 나와 만세를 부르면서 돌아왔다. 한편 서수주재소에 조합간부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에 흥분한 약 200명의 군중은 주재소를 습격하여 투석․유리창 박살․기물파괴를 하고 만세를 부르며 돌아왔다.
 두 곳의 주재소를 습격한 것이다. 이 소식에 군산경찰서는 전원 비상출동시켜 간부, 주동자 등 30여명을 강제로 검거하여 압송해 갔었다. 여기에 굴하지 않는 농민들은 다시 집결하여 약 200여명이 경찰서 앞에서 무죄 석방 시위를 하자 소방대를 동원 추운 날 물벼락으로 강제해산시키면서 주모자 일부를 구속하여 항쟁관련 총 80명을 군산경찰서에서는 혹독한 고문으로 취조한 후 51명을 검사국으로 송국(12. 8.)하였고 검사국에서는 51명중 재취조하여 34명을 협박, 명예훼손죄, 구금자 탈취, 소란죄로 기소(12. 27.)하고 법원에서는 치안유지법을 적용하여 전원 유죄판결(1928. 2. 29.)을 내렸다. 소작쟁의로서는 전무후무한 가혹한 판결이었다. 이 항쟁은 대구복심원 판결때까지(1928. 9.) 계속되었으며 그 후에도 꾸준히 항일운동은 지속되었었다. 묻혀 있었던 이런 큰 사건의 진상을 발굴하여 옥구군지(1990), 군산시사(1991)에 발표함에 따라 옥구농민의 항일항쟁은 단순한 二葉社農場의 소작쟁의가 아니라 전국 유일의 조직적인 농민의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항쟁이며, 3․1운동의 연장이고, 국내 항일의 독립운동이라고 학자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임피중학교 안에는 이를 기념하는 옥구농민항일항쟁 기념비가 있으며, 매년 11월 5일에 이곳에서 기념식을 한다.

2) 행사연혁
① 1994. 11. 20.(제1회 추모행사, 기념비 건립)
② 1999. 11. 25.(제2회 72주년 기념식) ~ 현재까지 매년 실시

3) 행사내용
① 식전행사(농악)
② 기념식

항일의병장 임병찬선생과 의병35인 충혼제
중동 당산제
  전북 군산시 대학로 330 (우)54129 TEL : 063-451-2138 FAX : 063-451-2180
COPYRIGHT2006.GUNSAN CULTURE CENTE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