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을 해결해 준 고구마

                                                                  고안상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던 무렵이었다. 그때는 참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이웃 친구네 집에 가보면 점심은 항상 고구마와 싱건지로 끼니를 때우곤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 마을 대부분의 친구들도 끼니를 풀데죽이나 고구마에 의존하며 살았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농지에다 수리 시설이 안 되고 비료나 농약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해마다 농작물 생산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부족한 양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야산이나 노는땅을 개간하려고 야단이었다.

  지난 5월 초순, 시장에서 고구마 모종을 사다가 텃밭에 심었다. 벌써 4개월이 다 되었다. 심은 지 120일이 지나면 수확할 수 있다니 요즘이 적기가 아닌가 싶어 우선 한 두럭을 캐 보았으나 수확량이 많지 않았다. 다음 주쯤 적당한 날을 잡아 나머지 고구마도 수확을 해 동생과 처제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간식으로 애용해야겠다.  

  옛날에는 고구마 모종을 가정에서 길렀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모님께서는 고구마 모종을 내려고 3월 초순 무렵이면 안방 윗목에다 모판을 만드셨다. 먼저 널빤지나 작은 통나무로 네모난 모판을 만든 다음 바닥에 짚과 모래를 수북이 깐 뒤 씨고구마를 촘촘하게 심었다. 그러고 나서 그 위에 흙과 왕겨를 두툼하게 덮은 다음에 물을 흠뻑 부어주었다.

  그런 뒤부터 모판을 살펴가면서 가끔씩 물을 촉촉이 주었다. 방안 공기가 따뜻하여 물을 머금은 씨고구마는 열흘 내지 2주 정도 지나면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나와 동생에게 삼사일에 한 번씩 물을 넉넉히 주도록 말씀하셨다. 호기심이 많던 시절이라 고구마순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동생과 나는 물을 주는데 정성을 다했다. 고구마순이 방 안에서 자라고 있는 동안에는 방이 비좁아서 생활하는데 불편함도 많았다. 하지만 가을철에 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불편을 잘 견디어내야 했다.

  5월 하순 무렵이 되면 고구마순은 듬뿍 자라 모판을 가득 채웠다. 모내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면 장마철에 접어들어 비가 자주 내렸다. 어머니는 그동안 잘 자란 고구마순을 가위로 잘라 밖으로 내어 놓으셨다. 그러면 나는 동생과 함께 어머니 말씀을 따라 적당한 간격으로 순을 잘라 고구마 모종을 준비했다.

  아버지는 고구마 밭 두럭을 치시고, 어머니는 모종을 간격에 맞추어 두럭에 심으셨다. 우리도 어머니께 작은 힘이나마 보태드리려고 서툴지만 함께 모종을 심었다. 어느 해인가는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료 포대를 몸에 두르고 심었던 일이 지금도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요즈음 나는 건강식으로도 좋다는 고구마를 쪄 밥 대신 먹곤 한다. 수리시설이 부족하고 농약이 없던 옛날에는 곡물 수확이 적어 해마다 서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러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에게는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고구마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고구마는 감저, 조저, 남감저라고도 하는데 원산지는 열대 아메리카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1600년대 중엽부터 고구마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알려졌으나 이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1763년 조엄이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오던 중 대마도에 들러 그 종자를 얻어 동래와 제주도에서 시험 삼아 심게 한 것이 고구마 재배의 처음 시도로 보인다. 그 뒤 강계현이 부산과 동래 지방에서 고구마 한 포기를 구해 와 집에서 직접 시험재배를 하였고, 또 동래부사 강필리에게 부탁하여 몇 포기를 더 재배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강필리는 이와는 별도로 동래지역에서 시험 재배한 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뒤 최초의 고구마 전문서인 『강씨 감저보』라는 책을 펴냈다.

  그 뒤 많은 사람들이 고구마를 재배할 것을 주장하고 이에 관한 저서도 남겼다. 특히 박제가는 나라에서 재배를 장려할 것을 주장하였고, 실제로 조정에서도 고구마 재배를 장려했다. 김장순은 고구마를 먹어보고 구황작물로 적합함을 깨닫고 전국적으로 보급시킬 방도를 찾았다. 그는 전남 보성에서 수년간 고구마 재배를 연구한 선종한과 서울에서 시험재배를 하였다. 이 시험재배가 성공하여 남부지방만이 아니라 서울지방까지 재배를 하게 되었고, 이에 관한 연구결과를 기록한 책이 『감저 신보』다.

  서유구는 1834년 『종저보』를 저술하는 한편, 호남지방의 보급에도 힘썼다. 서경창은 재배기술을 연구하여 북쪽 지방의 백성들도 고구마의 혜택을 주도록 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런 노력으로 1900년대 이후부터는 전국적으로 고구마를 재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분들의 노력으로 고구마 재배가 성공을 거두자 서민들의 끼니 문제가 크게 해소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굶주림으로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유니세프 TV 광고에서 본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어느 사이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가슴이 저린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들이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구호 기금을 통해서 돕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그들이 농지를 개발하고 작물을 재배하여 스스로 해결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정부나 기관, 봉사단체에서도 아프리카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고구마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처럼 그곳 토질에 적합한 농작물을 재배하도록 하려고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굶주림에 지쳐 생명이 꺼져가던 조선시대 가난한 백성들을 구해 준 것이 바로 이 고구마였다. 또 6·25 전란 뒤 끼니를 갈망하기조차 어려웠던 시절에도 고구마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었다. 이 모든 것이 이 땅에 고구마 재배를 가능케 하는데 온갖 정성을 다한 우리 선조들의 큰 공덕이 아닐 수 없다.

  지난날 가난했던 우리 조상들과 이웃들을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고구마는 참으로 고마운 작물이 아닐 수 없다. 이 고구마가 지금도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에서 해마다 가난 때문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2020.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