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씨가 수필집 ‘손가락이 바쁜 시대(도서출판 청명)’를 펴냈다. 등단 40주년을 맞는 작가가 그동안 발표한 대표작 가운데 40편을 가려 뽑아 17번째 수필집으로 탄생한 것.
작가는 1980년 월간문학 8월호에서 ‘전화번호’란 작품으로 신인상에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헸다. 조경희, 원형갑씨가 심사를 맡았었다. 그리해 전북 최초로 중앙문단에 등단한 수필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다음해에는 박양훈 김동필 정주환이 잇따라 ‘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가의 선두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그후로 작가는 전북수필문학회, 임실문인협회, 대표에세이문학회, 전북문인협회, 전북펜클럽 등 크고 작은 문학단체의 회장을 맡아 운영했다.
‘요즘은 손가락이 바쁜 시대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부터 손가락은 더 바빠졌다. 평일과 휴일, 밤과 낮의 구별도 없다. 손톱이 자랄 짬도 주지 않는다. 어느 여가수의 노랫말처럼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옛날엔 주산(珠算) 때문에 손가락이 바빴었다. 그 주산으로 온갖 계산을 다 했다. (중략)하나부터 다섯까지 세면서 지그시 눌러준다. 같은 방법으로 엄지를 이용해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을 차례로 눌러준다. 새끼손가락까지 다 누르고 나면 약지, 중지 순으로 되돌아오면 된다. 이런 운동을 되풀이하면 손가락이 유연해지고 튼튼해질 테니 ‘손가락이 바쁜 시대’에 이보다 더 필요한 운동이 어디 있겠는가?)’
수필은 이 작품처럼 관조와 사색의 문학이다. 수필 고유의 문학적인 면모가 인생에 대한 통찰과 사색의 깊이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업에 오래도록 ‘관조(觀照)’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그것의 본질을 응시하려는 영혼의 시선이다. 사물의 유한한 세계를 넘어 추상적 본질에 가 닿으려는 내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관조는 사물에게 가 닿는 내 몸의 물리적 시선이 아니라, 내 안의 내면적 시선을 의미한다. 그 내적 시선이 가지 않는 곳에서 대상은 사물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와 비로소 살아 있는 그 무엇이 된다. 존재의 내면의 체를 통해 걸러진 시간과 정서가 버무려져 생명력 가득한 조형 의식으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살아난 대상이 나를 넘어 다른 우리에게 공통적인 그 무엇을 환기시키는 촉발점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작가는 임실 출생으로 전북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전주해성중고등학교 교사와 서해방송 프로듀서, KBS 전주방송총국 편성부장을 끝으로 정년퇴직 했다. 목정문화상(문학 부문), 전주시예술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한국현대문학 100주년 기념 문학상 수필집 부문 금관상 등을 받았으며, ‘수필아, 고맙다’ 등 17권의 수필집과 ‘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 등 2권의 수필평론집을 펴낸 바 있다./이종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