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와 천덕꾸러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어이, 총무.”
“전두환 전 대통령 골프모임에서 한 끼 식사로 쌀 한가마니씩
먹었다며?“
“싹스핀인가 먹었는데 1인당 20만 원짜리니 한 끼 식사가 쌀 한 가마니지
않는가?”
“우리도 오늘 만만치 않게 먹었어.”
“다섯이 점심에 쌀 한 가마를
먹었으니….”
작은 모임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대를 지불하면서 회장께서 하신 말씀이다. 식사 값을 쌀로 계산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만 원이 나왔다고 하면 그래도 한 사람당
4만원 꼴이니 잘 먹었으니 그 정도는 되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쌀 한 가마라고 하니 마음에
와 닿았다. 쌀 한 가마면 우리 내외가 1년은 걱정 없이 먹을 양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쌀에 대한
애착은커녕 매년 가을이면 정부와 농민 간에 쌀값 때문에 갈등의 씨앗이 된 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쌀이 금싸라기 같던 시대에는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두 말을 먹고 시집가면 잘 먹었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이팝나무의 전설도 있다. 이 전설은 쌀이 천덕꾸러기가 된 듯한 요즈음도 가슴 아픈
전설로 전해진다.
가난해서 쌀밥을 지어보지 못한
며느리가 시집와서 제삿날 쌀밥을 짓다가 밥이 익었는지 확인해 보려고 밥알 몇 개를 입속에 넣었다가 이를 본 시어머니가 제삿밥을 먼저 먹었다는
이유로 며느리를 쫓아냈는데 쫓겨난 며느리는 뒷산에서 목을 매어 죽었단다. 이듬해 며느리 무덤가에 나무 한그루가 나와 하얀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가르쳐 쌀밥에 한이 맺혀 죽은 며느리가
부활한 것 이라고 해서 '이팝나무'라고 불렀다 한다.
전설까지야 아니지만
나의 어린시절도 쌀이 귀했다.
지금이야 경지정리가 잘 된 논에 물도
풍부하여 매년 대풍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어야 하는 천수답이 많았고, 물이 항상
마르지 않는 문전옥답이라야 한 마지기(지금의 200평)에서 쌀 두가마면 많은 수확이었다. 그나마 마을 앞 좋은 논은 그 마을의 몇몇 부호들의
차지였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쌀이 귀할 수밖에
없었다. 쌀을 아껴먹기 위해 밥에다 시래기를 넣거나
무, 고구마 등을 넣어 먹기도 했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한 눈물의 밥이었지만 지금은 월빙이라
하여 찾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머니는 부엌 아궁이 옆에 항아리를 놓고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줌씩 모아 그걸 팔아 자식들의 학용품을 사주기도 했다. 머슴들의 새경도 쌀로 주었다. 상머슴은 1년에 옷 두벌에 쌀10가마였으며 꼴머슴이라는 어린머슴은 두세 가마를 받기도
했다. 논밭을 사거나 팔 때도 쌀로 계산했다. 이렇듯 경제의 유통 가운데는 쌀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때가 먼 옛날의 전설 같지만 이제 겨우 몇 십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어떤가? 쌀 풍년이 들면 정부 관계자들은 한숨을 내쉰다는 말이
있다. 쌀 수확기면 농민은 쌀값을 올려달라며 시위를 하거나 벼논을
갈아엎기도 하면서 정부와 격한 투쟁을 한 지 오래되었다. 쌀의 생산은 많고 소비는 적다보니 쌀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쌀을 원료로 해서 막걸리나 음식도 개발하고, 심지어 오래
묵은 쌀은 동물의 사료로 사용된다니 천덕꾸러기가 된 듯한 느낌이다. 특별한 한 끼 식사가 쌀 한 가마고 보통의 점심값은 커피 한
잔 값과 같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쌀을 제외한 모든 곡물은
모자라 식량부족 국가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의 곡물수출국이 문을 걸어 잠그고
유엔식량계획기구는 국제적으로 대규모의 기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빈곤국은 학교가 폐쇄되면서 8,700만 어린이들이 학교급식을 받지 못하여 이미 굶주리고
있단다. 쌀이 남아도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는 묘하다. 풍족한 물건도 사재기를 시작하면 많던 것도 자취 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에서 마스크사태를 보면서 절실히 느끼지
않았던가?
쌀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우리의 생명
줄이다. 50여 년 전에는 한 달 내 먹고 재워주는 하숙비도 쌀 대여섯
말이었다. 하숙비 줄 쌀이 없어 자취를 하고 친구 집을 전전하며 학업을
했던 나였으니 어찌 회장님의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돌고 도는 것이 세상이며 극(極)하면 변하는 것이 또한 세상이다. 언제 또다시 쌀의 풍요가 변하여 이팝나무 전설의 망령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쌀이 금싸라기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고개를 저어 보며,
또한 쌀이 천덕꾸러기가 되는 일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4.21.)
